목자칼럼

수요온라인 성경공부(에스겔 - 285)

관리자 등록일 : 2026. 10. 28.

​285. 에스겔 열한 번째  ​ ​-마른 뼈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하나님 (에스겔 37:11~14)-  ​ ​선지서를 읽으면서 앞서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말씀으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러나 에스겔 34~39장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다시 회복시키실 것인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저는 이 가운데 37장의 마른 뼈 환상이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를 잘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성도들에게도 비교적 익숙한 말씀입니다. 마른 뼈에 생기가 들어가고, 죽음만 가득하던 골짜기의 뼈들이 살아나 큰 군대를 이루는 장면입니다.  ​ ​죽음만 가득한 골짜기에 수많은 마른 뼈가 널브러져 있습니다. 생명의 기운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소망이라고는 남아 있지 않은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그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비록 환상으로 보여주신 장면이지만, 단순한 꿈이나 상상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스라엘과 열방을 향한 심판의 말씀을 전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에스겔을 통해 자기 백성의 회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 ​물론 우리는 이 환상의 모든 의미를 완전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 의미를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른 뼈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말씀하십니다.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겔 37:11). 나라를 잃고 포로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뼈가 말랐고 소망이 없어졌으며 끊어졌다고 탄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백성을 다시 살리시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겔 37:12~14).  ​ ​에스겔 34~39장은 이러한 회복의 약속을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34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백성을 돌보지 않고 자기 이익만을 추구한 목자들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양 떼를 찾고 돌보시며, 이어서 한 목자, 곧 하나님의 종 다윗을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겔 34:11~16, 23~24). 35장에서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기뻐하고 그 땅을 차지하려 했던 에돔을 심판하십니다. 36장에서는 황폐해진 땅을 다시 풍성하게 하시고,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진 백성을 모으시며, 그들을 정결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시며, 하나님의 영으로 그들이 말씀에 순종하도록 하시겠다는 약속도 주십니다(겔 36:24~28).  ​ ​37장에서는 마른 뼈 환상을 통해 소망을 잃은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살리시고 그들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어 유다를 상징하는 막대기와 요셉, 곧 에브라임을 상징하는 막대기를 하나로 합치십니다. 이는 분열되었던 이스라엘과 유다가 하나가 될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왕과 한 목자가 그들을 다스리고, 그들 가운데 거하시며 영원한 언약을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겔 37:15~28). 38~39장에서는 회복된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곡과 그 연합군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이를 통해 열방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주권을 알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모으시고, 더 이상 그들에게서 얼굴을 숨기지 않으시며, 자신의 영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부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겔 39:21~29).  ​ ​그렇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이후 역사에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선지서를 통해 계시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이후 역사에서 그대로, 완벽하게 실현되었을까요?  ​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 ​기원전 539년, 바사 왕 고레스는 바벨론을 정복합니다. 이듬해인 기원전 538년경에는 유다 포로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칙령이 내려집니다(스 1:1~4). 오랫동안 포로 생활을 하던 백성에게 돌아갈 길이 열린 것입니다.  ​ ​기원전 520~516년경에는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의 인도 아래 성전 재건이 진행됩니다. 학개와 스가랴의 격려 속에서 공사가 다시 추진되었고, 기원전 516년경 마침내 성전이 완공됩니다(스 3~6장). 예루살렘 성전이 다시 세워졌다는 점에서 예배 공동체의 회복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 ​기원전 458년경에는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와서 율법을 가르치고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도록 이끕니다(스 7~10장). 기원전 445년경에는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와서 성벽을 재건하고 공동체의 질서를 바로잡습니다(느 2~6장). 성전과 성벽이 다시 세워지고, 말씀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정비하는 일이 이어졌습니다. 무너졌던 예루살렘이 다시 유다 공동체의 중심지로 회복된 것입니다.  ​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는 실제 역사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귀환 공동체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한꺼번에 돌아온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일부 백성이 귀환했지만, 상당수 유다인들은 바벨론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또한 성전과 성벽이 재건되었다고 해서 에스겔이 선포한 모든 약속이 완성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분열되었던 백성의 완전한 통합, 한 목자의 통치, 영원한 평화의 언약과 하나님의 지속적인 임재에 관한 약속을 포로 귀환 이후의 역사만으로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 ​그렇다고 해서 에스겔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포로 귀환과 성전 재건은 분명한 역사적 회복이었습니다. 다만 그 회복이 모든 약속의 완성을 의미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선지서의 말씀은 먼저 당시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역사 속에서 실현된 회복을 넘어서는 궁극적인 회복의 전망이 담겨 있음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는 이러한 궁극적인 회복을 그리스도의 통치와 재림, 새 창조의 소망 안에서 이해합니다.  ​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회복의 길을 열어 주신다고 해서 인간의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고 공동체를 정비한 뒤에도 백성의 삶에는 다시 여러 문제가 나타났습니다(느 13장). 회복된 공동체 안에서도 인간의 어리석음과 연약함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된 회복의 과정도 인간의 잘못된 선택과 죄의 유혹으로 훼손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그러나 인간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실패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에스겔 36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백성에게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시고, 자신의 영을 주셔서 말씀에 순종하도록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겔 36:26~27).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회복이 완성될 수 없음을 아셨기에 친히 회복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적 회복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의 힘만으로는 완전한 회복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도 보여줍니다.  ​ ​마른 뼈를 살아 있는 군대로 회복시키시는 환상은 헛된 몽상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절망에 빠진 백성을 다시 일으키시고 회복의 길로 인도하셨음을 보여줍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를 모두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해가 부족하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역사까지 끝난 것은 아닙니다.  ​ ​우리의 눈에 더 이상 소망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미 모든 것이 무너졌고, 다시는 일어설 수 없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에서도 새로운 생명을 일으키신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망에 빠진 백성을 다시 살리시고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은혜는 오늘도 우리에게 소망을 줍니다. 마른 뼈 같은 인생을 다시 일으키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우리 역시 그 은혜 안에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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